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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tractions

경희궁, 조선의 서궐( 西闕 )

by 친숙한외국인 2025. 4. 14.

 

서울 도심 한복판, 고층 빌딩과 현대적인 거리 속에 숨겨진 고즈넉한 궁궐이 있습니다. 바로 조선의 5대 궁궐 중 하나인 경희궁입니다. 경복궁이나 창덕궁에 비하면 다소 덜 알려졌지만, 그만큼 조용하고 여유롭게 역사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곳이죠. 오늘은 경희궁의 역사적 배경과 유래, 그리고 현재의 모습을 통해 여러분을 이곳으로 초대하고 싶습니다. 

 

 

 

경희궁의 유래와 역사적 배경

경희궁은 1617년(광해군 9년)에 시작되어 1623년(광해군 15년)에 완공된 조선 시대의 궁궐입니다. 원래 이름은 경덕궁이었는데, 이는 ‘덕을 기뻐하다’는 뜻을 담고 있죠. 이 궁궐은 인조의 생부인 정원군의 사저(개인 저택) 터에 세워졌습니다. 당시 술사가 이곳에 ‘왕기(王氣)’가 서렸다고 전하며, 광해군이 궁궐 건립을 결정했다고 해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광해군은 1623년 인조반정으로 폐위되며 이곳에 입궁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반정에 성공한 인조가 경덕궁에서 즉위하며 궁궐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죠.

흥화문
흥화문

경희궁은 서울 서쪽에 자리 잡아 ‘서궐’로 불렸으며, 경복궁(북궐), 창덕궁·창경궁(동궐)과 대비되는 독특한 위치를 가졌습니다. 조선의 이궁(離宮)으로, 왕이 임시로 머물거나 비상시 거처로 사용되곤 했어요. 특히 인조 이후 10명의 왕이 이곳에서 정사를 보거나 생활하며 깊은 인연을 맺었습니다. 예를 들어, 숙종은 경희궁의 회상전에서 태어나 융복전에서 승하했고, 영조 역시 이곳 집경당에서 생을 마감했죠. 정조는 숭정문에서 즉위하며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공표한 역사적인 장소로도 유명합니다.

숭정문
정전 숭정전

1760년(영조 36년), 궁궐의 이름이 경덕궁에서 경희궁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는 정원군의 시호 ‘경덕(敬德)’과 발음이 같아 혼동을 피하고자 ‘희망과 기쁨’을 뜻하는 경희로 개칭한 것이죠. 이렇게 경희궁은 조선 중·후기를 거치며 왕실의 중요한 무대로 자리 잡았습니다.

경희궁의 아픔과 변화

하지만 경희궁의 역사는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1829년(순조 29년) 대화재로 회상전, 융복전 등 주요 전각이 소실되는 큰 상처를 입었죠. 이후 일부만 중건되었지만, 고종 초 경복궁 중건 과정에서 자재를 조달하기 위해 경희궁의 많은 건물이 철거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일제강점기에는 경희궁 터에 경성중학교(현 서울고등학교)가 들어서며 대부분의 전각이 사라졌습니다. 일제는 한국의 왕실 문화를 말살하려는 의도로 궁궐을 훼손했고, 현재 남아 있는 원래 건물은 정문인 흥화문, 정전인 숭정전, 그리고 후원의 황학정 단 세 채뿐입니다.

흥화문의 이야기는 특히 흥미롭습니다. 일제에 의해 신라호텔 정문으로 옮겨졌던 이 문은 해방 후 복원 작업을 통해 제자리로 돌아왔죠. 숭정전 역시 한때 동국대 법당으로 사용되다가 복원되어 지금의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이런 아픔을 딛고 경희궁은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어요.

현재의 경희궁, 어떤 모습일까?

숭정전에서 조정과 숭정문

오늘날 경희궁은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사적 제271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습니다. 1988년부터 복원 사업이 시작되어 흥화문, 숭정전, 자정전(편전) 등이 원형에 가깝게 재현되었죠. 경희궁은 다른 궁궐에 비해 규모가 아담하지만, 그래서 더 조용하고 여유로운 매력이 있습니다. 도심 속에서 잠시 시간을 되돌린 듯한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이곳만 한 곳이 없죠.

경희궁 조정

숭정전은 경희궁의 중심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4칸의 이중 월대 위에 세워진 품격 있는 전각입니다. 조선 왕들의 즉위식과 국가 행사가 열렸던 곳으로, 정조와 헌종이 이곳에서 왕위에 올랐어요. 자정전은 왕이 일상적인 정무를 보던 편전으로, 숭정전 뒤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복원된 태녕전과 울창한 수림은 경희궁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더해줍니다.

숭정전

특히 경희궁은 다른 궁궐과 달리 무료 입장입니다.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5번 출구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위치해 접근성도 뛰어납니다. 근처에는 서울역사박물관과 농업박물관이 있어 함께 둘러보며 서울의 역사를 깊이 탐방하기에도 좋아요.

경희궁 방문 팁과 매력 포인트

경희궁은 사계절 모두 아름답지만, 특히 가을 단풍과 봄의 푸른 나무들이 어우러질 때 더욱 운치 있습니다. 사진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숭정전의 기와 지붕과 인왕산 자락을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남길 수 있어요. 또, 궁궐 내에서 열리는 전통 공연이나 체험 프로그램이 종종 마련되니 방문 전 공식 홈페이지나 서울시립미술관(경희궁 옆에 위치) 일정을 확인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도심 속에서 잠시나마 조선의 숨결을 느끼고 싶다면, 경희궁은 더 없이 좋은 선택입니다.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고요한 궁궐 마당을 거닐며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떠나보세요. 경희궁은 화려함 속에 숨겨진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